박해영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감정을 다뤄온 인물이다. 그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틈새에 숨어 있는 감정의 흔들림을 집요하게 포착해왔다. 인물들이 내뱉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갖는 서사, 설명하지 않지만 느끼게 만드는 문장은 그의 작품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서사는 시청자에게 빠른 쾌감을 주지는 않지만, 대신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이토록 무기력해졌는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박해영 작가의 작품 전반을 관통한다. 그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 역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최근 차기작으로 알려진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제목만으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미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존엄, 관계의 균열을 깊이 있게 그려낸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개인과 사회의 내면을 동시에 응시하는 서사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해영 작가가 구축해온 서사의 출발점
박해영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결핍과 침묵이다. 그의 인물들은 대체로 사회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으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쉽게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은 상처를 과장되게 드러내지 않고, 대신 조용히 견디며 하루를 살아간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결핍이 비극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물들은 서로를 구원하지도, 완전히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작은 순간을 통해 숨을 고르고, 다시 버틸 힘을 얻는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을 닮아 있으며, 시청자에게 과도한 감정 이입 대신 차분한 공감을 유도한다.
대사 역시 이러한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낸 문장, 반복되는 침묵은 시청자가 인물의 감정을 직접 채워 넣도록 만든다. 이는 박해영 작가의 서사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으로 평가된다.
‘나의 아저씨’, 감정의 기준을 다시 세운 작품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박해영 작가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중년 남성과 청년 여성이라는 설정은 자칫 자극적으로 소비될 수 있었지만, 작품은 그 경계를 철저히 비껴갔다.
이 드라마는 누군가를 구원하는 이야기라기보다, 각자의 삶을 버텨내는 태도에 관한 기록에 가까웠다. 인물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극적인 해결 역시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고, 작품은 방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회자됐다.
화제성보다 시간이 쌓일수록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은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tvN 공식 홈페이지(https://tvn.cjenm.com/ko/mymister/)에서도 ‘나의 아저씨’는 채널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소개되고 있다.

‘나의 해방일지’, 침묵의 언어를 확장하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나의 아저씨’ 이후 선택된 또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작품은 가족과 지역, 반복되는 노동과 일상을 배경으로 삼아 인물들의 무기력과 해방 욕망을 더욱 섬세하게 다뤘다.
인물들은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하루를 견디고, 서로에게 아주 작은 위안을 건넨다. 이러한 방식은 빠른 전개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낯설 수 있었지만,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의 해방일지’는 감정의 폭발보다 축적을 선택한 드라마였다. JTBC 공식 홈페이지(https://tv.jtbc.co.kr/myliberationnotes)에서도 작품의 이러한 정서적 방향성이 강조돼 있다.
차영훈 감독과의 협업이 만들어낼 변화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연출을 차영훈 감독이 맡는다. 차영훈 감독은 ‘동백꽃 필 무렵’, ‘웰컴투 삼달리’를 통해 인물 중심의 서사와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 연출자로 평가받아왔다.
차영훈 감독의 연출은 인물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장면 하나하나에 온기를 더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징은 박해영 작가의 내면 지향적인 대사와 결합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신작이 던질 또 하나의 질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자존감과 존재 의미를 정면으로 다룰 예정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쓴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캐스팅돼 있으며, 관계와 감정의 흐름에 집중한 전개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박해영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거창한 사건보다 일상의 순간들이 서사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
박해영 작가가 꾸준히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대중의 취향을 좇기보다, 자신이 던지고 싶은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고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거쳐 신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매번 다른 각도의 인물을 제시해왔다. 이 점이 그를 한국 드라마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았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다음 행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또 한 번 박해영 작가의 질문이 사회와 만나는 지점이 될 것이다. 이전 작품들처럼, 이번 역시 즉각적인 해답보다는 오래 남는 여운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차영훈 감독과의 협업, 새로운 배우진과 함께 만들어질 이 드라마는 그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또 하나의 장면이 될 전망이다. 그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분명한 언어로, 우리 모두의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성자: 이슈모어 | 작성일: 2026년 01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