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잇는 ‘축적의 시간’
변요한은 단숨에 화제를 모으는 배우라기보다, 작품마다 층을 쌓아 올리는 성장형 배우의 표본에 가깝다. 초기에 독립영화와 단편에서 반짝 존재감을 남긴 그는 드라마와 영화로 외연을 확장하며 필모그래피의 밀도를 높였다. 대사량이나 러닝타임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장면의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 캐릭터의 동선을 과장하지 않고 설득력으로 채우는 태도는 지금의 변요한을 규정해 왔다. 최근 공개된 프로필 촬영에서도 같은 결이 읽힌다. 화려한 콘셉트 대신 표정과 시선, 각도만으로 이야기를 암시하는 미니멀한 프레임은, 배우가 습관처럼 붙들어 온 절제의 기술을 보여준다. 이 기술은 TV와 OTT, 극장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유지되며,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만들되 배우의 뼈대는 흔들지 않는 방식으로 축적되어 왔다. 그 축적이 오늘의 변요한을 신뢰하게 만드는 근거다.
‘미생’에서 ‘육룡이 나르샤’까지, 드라마가 입증한 신뢰
대중에게 이름을 또렷하게 각인시킨 순간은 드라마 ‘미생’이었다. 변요한이 그려낸 한석율은 생동감 있는 언어와 눈빛, 현실적인 리액션으로 직장인의 하루를 차곡히 옮겨왔다. 오피스 장르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에너지를 장면에 주입하는 방식은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 이어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변요한은 이방지로 변주에 성공했다. 대사보다는 동작과 호흡으로 감정을 번역해내고, 액션과 감정의 체온을 동시에 유지하는 균형감으로 작품의 몰입을 견인했다. 시대극에서 요구되는 발성과 호흡, 검술과 안무의 정확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는 장면의 과열을 경계하면서도 캐릭터의 결을 놓치지 않았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김희성으로 또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유려한 매너 속에 분열과 갈등, 시대의 균열을 품은 인물의 복합성을 단정한 톤으로 조율해 시청자에게 오래 남는 잔상을 남겼다. 이처럼 드라마에서 변요한이 꾸준히 확보해 온 신뢰는, 이름이 크레딧에 등장하는 순간 최소한의 완성도를 기대하게 만드는 믿음으로 환전된다.

‘자산어보’와 ‘한산: 용의 출현’, 스크린에서 증명한 내공
영화에서의 성과는 또렷하다. ‘자산어보’에서 변요한은 젊은 학자 창대 역을 맡아 흑백 이미지 안에 감정의 농도를 치밀하게 채웠다. 색을 덜어낸 화면 위에서 배우의 표정과 호흡은 더 크게 확대된다. 그는 작은 근육의 떨림, 숨을 들이쉬는 길이 같은 미세한 단서들로 인물의 윤리를 그려내며 작품의 실험적 형식과 자연스럽게 합을 맞췄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대규모 해전 시퀀스 속에서도 존재감이 흐려지지 않는 법을 보여줬다. 큰 스케일의 장면 속에서 인물의 목표와 감정을 분명히 표기하는 연기, 즉 ‘소리보다 방향’이 중요할 때 변요한은 방향을 잃지 않았다. 전쟁의 소음 한가운데서도 배우의 시선과 타이밍이 장면의 맥을 붙들어 주었고, 관객은 혼잡한 구도 속에서도 감정의 라인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죽었다’, 복합성을 설계하는 태도
최근작 ‘그녀가 죽었다’에서 변요한은 부동산 중개업자라는 겉옷 아래 집착과 결핍, 죄책감이 교차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그는 캐릭터를 과장된 표정으로 압축하기보다 일상의 동작과 루틴을 통해 내면의 그늘을 스며들게 했다. 층층이 쌓인 심리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 방식, 관객에게 해석의 여백을 남겨두는 전략은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인터뷰에서 밝혀온 연기 철학—텍스트의 여백을 성급히 채우지 않는 절제, 파트너의 리듬을 존중하는 호흡—은 이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작동했다. 촬영 환경이 빡빡할지라도, 변요한은 장면의 균형을 우선에 두는 습관으로 결과물을 정돈한다. 그 습관이 배우의 내구성을 만든다.
그렇다고 그가 늘 무거운 결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구여친클럽’에서는 코미디의 템포를 이해하는 배우의 리듬을 보여줬고, ‘닥터스’에서는 현실적인 감정의 디테일로 멜로드라마의 설득력을 확보했다. 장르의 표면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장르의 법칙을 배우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변요한이 반복해 온 작업은 바로 그것이다. 이 번역 능력이 쌓이며, 다음 작품의 문턱을 자연스럽게 낮춘다. 제작진은 ‘톤의 일관성’을 믿고 캐스팅할 수 있고, 관객은 ‘최소한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필모그래피를 시간 순으로 훑어보면 공통된 축이 보인다. 첫째, 변요한은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단서를 신체의 작은 습관에서 끌어온다. 둘째, 리허설에서 파트너의 호흡을 기록하고 본 테이크에서 그 리듬을 깨지 않는 선에서 변주한다. 셋째, 서사의 중심과 주변을 오가며 장면의 합을 우선시한다. 이 축은 장르가 바뀌어도 유지된다. 그래서 ‘사극의 검객’에서 ‘현대극의 평범한 청년’, ‘스릴러의 복합적 인물’로 이동해도, 배우의 얼굴은 과열되지 않고 장면의 설득력은 유지된다.
프로필 사진 한 장에도 같은 태도가 묻어난다. 과장된 포즈를 덜어내고, 시선의 높낮이와 어깨의 긴장만으로 프레임을 완성하는 방식은, 캐릭터의 출발점을 사전에 그려두는 스케치와도 같다. 현장에선 이 사전 스케치가 첫 테이크의 안정성을 높인다. 감독과 스태프는 배우가 장면을 독점하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지키는 방식을 알고, 변요한은 그 기대에 과장 없이 응답한다. 이렇게 축적된 신뢰가 ‘다음 선택’을 끌어오는 가장 현실적인 동력이다.
물론 배우의 커리어는 화제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반복 가능한 실력, 즉 루틴이다. 변요한은 과거 인터뷰에서 감정의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습관을 강조해 왔다. 감정을 길게 붙들지 않고 장면의 필요에 맞춰 온도를 조절하는 습관은, 긴 호흡의 드라마에서도 번아웃을 줄이고 영화의 촘촘한 편집 리듬에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만든다. 촬영장의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이 습관의 효용은 커진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체감하는 ‘자연스러움’은 많은 경우 이런 보이지 않는 루틴에서 비롯된다.
대중과의 거리 유지 또한 배우의 장기전을 돕는다. 변요한은 SNS에서 과한 노출을 지양하고, 작품 관련 소식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며 관계를 이어간다. 신비감을 과도하게 연출하진 않되, 작업물이 먼저 말하도록 뒤로 물러서는 태도는 배우의 이미지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현대의 소비 속도는 빠르지만, 신뢰는 여전히 느리게 쌓인다. 변요한은 그 느린 속도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드라마의 문법과 영화의 문법은 다르다. 그러나 배우에게 요구되는 기본은 겹친다. 텍스트를 정확히 읽는 눈, 파트너의 리듬을 존중하는 귀, 카메라 앞에서 감정의 크기를 미세 조정하는 몸. 변요한이 여러 장르를 오가며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기본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기작의 장르가 무엇이든,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장면의 중심은 과열되지 않고 단단해진다. 관객은 그 단단함을 ‘신뢰’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변요한은 눈에 띄는 이슈로 커리어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타입이 아니다. 대신 한 작품 한 장면을 정확하게 쌓아 올려, 이름 옆에 신뢰라는 단어를 붙여 왔다. ‘미생’의 현실적인 청년, ‘육룡이 나르샤’의 검객,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 ‘자산어보’의 학자, ‘한산: 용의 출현’의 전장 속 인물, ‘그녀가 죽었다’의 복합적 캐릭터까지—서로 다른 껍질 아래 흐르는 공통의 태도가 그의 필모그래피를 한 줄로 묶는다. 다음 선택이 무엇이든, 관객이 기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변요한이 장면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서사를 앞으로 밀어 올린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확인이 쌓여 오늘의 신뢰가 되었고, 그 신뢰가 내일의 선택을 부른다.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이 결국 장면을 통해 관객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라면, 변요한은 지금도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작성자: 이슈모어 | 작성일: 2025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