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나, ‘폭군의 셰프’로 확장한 시야와 배우로서의 안간힘
강한나는 tvN 사극 ‘폭군의 셰프’에서 궁중의 권력 흐름과 일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인물로 등장해, 표정과 호흡만으로도 장면의 공기를 바꾸는 힘을 다시 확인시켰다. 극의 전면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보다, 말끝을 다듬고 눈빛을 한 톤 낮추는 장면에서 캐릭터의 결을 세우는 방식이 돋보였다. 특히 권력의 균형이 흔들릴 때 강한나가 선택하는 ‘멈춤’—한 박자 쉼—은 화면의 시간감을 늘리고, 상대 배우의 대사조차 더 분명하게 들리도록 만들었다. 이런 설계는 현장에 오래 붙어 있는 배우가 아니면 쉽지 않다. 촬영지의 온도, 조명 반사, 카메라 거리 같은 물리 조건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다음 감정을 올리는 순서를 몸에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스펙트럼: 냉정과 연민 사이의 미세한 온도
강한나가 ‘폭군의 셰프’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상대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태도다. 이를테면 왕권과 내명부가 첨예하게 맞붙는 순간, 그녀는 분노를 곧장 터뜨리기보다 연민의 표정을 짧게 스친 뒤 단호함으로 교체한다. 관객이 캐릭터의 내면을 ‘단일 감정’으로 규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미세한 온도 차는, 이후의 선택을 합리화할 근거가 된다. 화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북소리, 주방의 끓는 소리 같은 생활 소음과 감정의 결을 맞추는 디테일도 눈에 띈다. 강한나는 작은 생활 소리를 ‘심장 박동’처럼 이용해 감정의 고조를 슬며시 밀어 올린다.

현장 감각: 분장·의상·동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사극은 분장과 의상이 촬영 흐름을 좌우한다. 강한나는 헤드피스와 중량감 있는 의상으로 인해 상체 가동 범위가 제한되는 조건에서, 고개 각도와 손끝 디테일로 감정의 폭을 보강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면 응시를 오래 유지하면 무게가 쏠리기 쉬운데, 그녀는 시선을 3시·5시 방향으로 잠깐 흘려 보내 화면에 여백을 만든 뒤, 다시 렌즈를 정조준해 서사의 중심을 회수한다. 걷기 동선도 단단하다. 카메라와의 거리를 반 박자 일찍 잡아, 대사 직전의 호흡을 온전히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강한나의 장면은 편집점이 촘촘해도 리듬이 끊기지 않는다. 이는 대본의 의도와 현장의 우발성을 함께 끌어안는 태도에서 나온다.
전작 리와인드: 현대극에서 사극까지, 톤 전환의 공식
강한나가 오늘의 지점을 만든 배경에는 장르를 넘나든 최근 3~4년의 축적이 있다. JTBC ‘프랭클리 스피킹’에서 예능 작가 송우주로 생활의 호흡을 익혔고, KBS ‘붉은 단심’에서는 정치·로맨스가 교차하는 사극의 무게를 체득했다. tvN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는 코미디 타이밍과 판타지 세계관의 규칙을 조화시켰고, 같은 해 ‘스타트업’에서는 스타트업 신의 언어와 감정을 현실적으로 받아 적었다. 이 경험은 ‘폭군의 셰프’에서의 이행 속도를 높였다. 현대극이 주는 말맛과 사극이 요구하는 정제된 몸짓이, 그녀의 장면 안에서 무리 없이 맞물린다. 한마디로, 강한나는 톤 전환을 ‘점프’가 아니라 ‘슬라이드’로 수행한다.
인물 구축법: 서사의 한가운데까지 ‘거리 두기’로 접근
인물을 빠르게 연민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강렬한 혐오를 유발하는 방식은 쉽게 관객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강한나는 때때로 인물과 거리를 둔다. 그녀는 인물의 욕망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듣는 태도와 주변 소품을 다루는 손의 속도로 설명한다. 관객은 그 ‘거리’를 추적하며 인물에게 다가간다. 이 방식은 서사를 느리게 만드는 대신, 장면의 잔상을 길게 남긴다. ‘폭군의 셰프’에서 그녀가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선택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거리 설계’다. 감정의 결론을 미루는 대신, 증거를 쌓는다. 표정의 체류 시간, 한숨의 길이, 발걸음의 무게 같은 비언어적 신호들이 쌓이면서, 인물의 신뢰도가 자연스레 오르는 방식이다.
비하인드의 힘: 셋 현장에서 완성되는 일관성
촬영 중 짬을 내 찍은 현장 사진은 팬에게는 소통이고, 제작진에게는 기록이다. 강한나의 온셋 컷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비하인드에서도 인물의 결을 해치지 않는 서늘한 균형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는 사진에서도 어딘가 캐릭터의 잔향이 남아 있고, 눈빛에는 아직 촬영 중인 장면의 온도가 배어 있다. 이는 그녀가 촬영 텐션을 임의로 끊지 않고, 대기 시간에도 말을 절약하며 호흡을 고르는 습관과 맞닿아 있다. 조명이 조금 변하거나, 세트의 동선이 급히 조정돼도 장면의 톤을 오래 붙들 수 있도록 컨디션을 보존하는 것이다. 강한나가 꾸준히 ‘현장형 배우’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 행보를 기다리며: 사건보다 상태를 보는 시선
사극의 시즌이 끝나면 배우는 종종 강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현대극이나 로맨틱 장르를 택한다. 강한나가 앞으로 선택할 작품은 아직 확정 단계의 정보가 많지 않지만, 최근 행보를 놓고 보면 ‘사건의 크기’보다 ‘상태의 변화’를 섬세하게 관찰하는 서사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작은 오해가 관계의 태도를 바꾸고, 말하지 않은 사실이 표정에 남아 체온을 흔드는 이야기들—그런 대본에서 그녀의 강점이 선명하다. 한편으로는 장르적 완급이 뚜렷한 스릴러나 휴먼 미스터리에서도, 비언어적 신호를 축적하는 연기가 유효하다. 제작 환경의 변수가 많은 시대지만, 강한나의 방식은 변수가 많을수록 가치를 가지는 방법론이다.
결국 ‘폭군의 셰프’는 강한나에게 사극의 체력과 생활극의 호흡을 결합해 한 단계 넓어진 스펙트럼을 확인시킨 작품으로 남는다. 감정의 속도를 함부로 앞세우지 않고, 장면의 온도를 세팅한 뒤 대사를 올리는 순서를 지키는 태도는, 다음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을 ‘기본기’다. 카메라가 가까워질수록 호흡을 낮추고, 멀어질수록 제스처를 크게 가져가는 화면 문법의 숙련도 역시 이미 증명됐다. 다음 프로젝트가 어느 장르든, 강한나라는 이름이 크레딧에서 기대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성자: 이슈모어 | 작성일: 2025년 10월 4일